여자는 손에서 휴대전화를 내려놓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.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. 사랑스러운 고양이라도 바라보는 양 화면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. 가끔은 소리내어 웃기까지 했다. 나는 이상하게도 길게 늘어지는 날숨을 내리 참아가며 시선을 티비에 고정했다. -아니 고정하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.- 티비화면이 한번 씩 바뀔 때마다 그녀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를 빼앗고 싶어서 소파에 붙은 엉덩이가 들썩이기를 참는 것만 벌써 몇 십번 째였다. 언젠가 책에서 읽은 마시멜로 실험에 대해 그 마시멜로 하나를 먹지 않는 일이 무어 어려운가 하며 멸시했던 과거의 내가 멍청히도 교만했음을 깨닫고야 말았다. 그 당시의 교훈이 지금 와서야 머리로 이해되는 것도 우스웠지만 그녀에 대한 나의 반응 역시도 이에 못지않게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.
- 나 소개팅 나가.
그냥 지나가듯 저녁 밥상에서 흐른 그녀의 말이 폭풍의 경종을 울리는 시발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. 아니, 어쩌면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에 목이 졸려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더 양심적임을 고백한다. 지민이 형과 태형이 형은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들던 수저를 내려놓고 그게 무슨 소리냐며 몇 알의 밥풀을 튀겨가면서 그녀가 소개팅에 나가서는 안 되는 열 가지의 이유라도 외쳤다. 다른 형들도 고개를 저었다. 나만이 아무런 반응 없이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. 그때야 아무렇지도 않았고 사실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으며-그렇게 믿고 있고- 나와는 결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.
그런데 이제 와서야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나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되려 억울하기까지 했다. 스스로의 자존심을 꾸짖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. 자존심이라는 것도, 낄 데 끼고 빠질 때 빠져야 하는 것이다. 왜 하필 그 순간에 보란 듯이 고개를 치켜들고 뻔뻔히 뒷짐을 지고선 이제 와서야 꼬랑지를 내리고 굴속으로 기어 들어가느냐는 말이다. 숨으려 드는 자존심을 기어코 쥐어 잡아 다시 머리 꼭대기에 올려 앉히고 싶었다.
아 목말라.
반대편 소파에서 일어서는 그녀를 토끼 좇듯 흘끔흘끔 곁눈질했다. -뒤를 돌아 부엌으로 가는 모습은 아예 대놓고 바라보기는 했지만.- 그녀는 여전히 한 손에 민트색 케이스를 끼운 휴대폰을 들고 냉장고를 뒤적거렸다. 꺼지지 않은 화면의 카톡 내용이 미치도록 궁금했다. 저만큼이나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배터리는 얼마나 닳았을지도 궁금했다. 별 게 다.
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기어코 내가 그녀를 무척이나 신경쓰고 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. 그와 동시에 인정했다. 무엇을?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? 형들만큼이나 나도 그녀를 생각하는 것을? 아니, 형들과는 다르다고 믿는다.-믿고 싶다.- 나는 그녀를 조금은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이다. 그냥 그저 걱정이 되고 궁금한 정도로 생각한다고 하기에는 부족한. 조금 더 각별한. 그런 것. 차마 입으로든 마음으로든 말하기 부끄럽지만. 그런.
식탁에 유리컵이 달칵 놓이는 소리에 나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옮겨 휴대폰을 들었다. 그녀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기 위함이었다. 차라리 티비를 바라볼 걸 그랬나 일말의 후회가 스쳤지만 개의치 않았다. 휴대폰에는 아무런 연락도 와 있지 않지만 계속해서 화면을 넘기고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했다가 끄기를 반복했다. 그냥 한 낮의 시간일 뿐인데도 엉겁의 시간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.
그녀가 컵의 물을 들이킬 때, 나는 마음을 먹었다. 이르게든 느리게든 가져가겠노라고. 자존심과 협상해보겠노라고. 그때까지 나는 나를, 그리고 그녀를 모른 척 할 것이다. 되든 되지 않든.

